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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야기

거울노을 2007. 3. 27. 10:54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동문선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씨의 작품중에 좋아하는 장르는 수필이다. 그 다음이 단편, 그리고 마지막이 장편의 순. 아주 옛날, 과연 하루키는 어떤 작자인가 알기 위해서 그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고 마음에 들었던 것인데, 다른 작품들을 다 읽다보니 왠지 장편보다는 그래피티같은 그의 가벼운 수필들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요즘에 다시 읽는 책은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라는 것으로 김난주씨의 번역판인데, 원제가 이것인지는 알수 없고, 가장 최근에 <주간 아사히>에 연재했던 코너인 <무라카미 아사히도>라는 수필들의 모음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이 한글판의 제목은 안의 이야기들중 하나의 소제목이니 뭐라고 싫은소리를 할수는 없지만, 어쨌든 참으로 책을 팔아먹기 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제목라고 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잠시 제목 얘기를 마저 하자면, 작가 이름인 '무라카미'에 주간지의 이름인 '아사히', 그리고 집을 의미하는 당(堂)을 일본어로 '도'라고 읽는 듯 하다.

암튼 다시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서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하루키씨는 동경에 어느날 눈이 많이 쌓여서, 조깅을 할수가 없을것 같아 차를 몰고 수영장에 가려고 나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자신도 모르게 세번씩이나 우측차선으로 들어가고 말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차가 좌측통행) 하루키씨는 외국에서 많이 살았기 때문에 우측통행을 많이 했었는데, 이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해에 다시 동경으로 돌아와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고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면서 다녀서 다행히 아무일 없이 다시 좌측통행에 적응이 되었는데 반년이 지난 어느날 불쑥 우측통행을 했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왜 그런것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도 알수가 없었는데, 나중에야, 눈이 많이 오던 보스턴에서 많은해를 보낸 탓에 그날 쌓여있던 눈이 보스턴에 있을때의 풍경을 떠올려서 조건반사적으로 우측통행을 한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릴수가 있었다고 한다. 보통 여기까지 읽고나면 뭐야,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인데 하루키씨는 그 다음을 다음과 같이 잇고 있다.

<그러니 만약 내가 이날 실수로 반대 차선에 들어갔을 때, 운수 사납게 사고라도 일으켜 꼴까닥 죽고 말았다면 아무도 그 원인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벌써 일본으로 돌아온지 꽤 되었고, 좌측통행에도 익숙해 있었는데, 왜 갑자기 실수를 한 것일까요?' 하고들 의문을 품을 것이다. 사고의 원인이 도쿄 거리에 오랜만에 내린 눈 탓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내 자신조차도 그렇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으므로. 세상이란 정말이지 예상할 수 없는 무수한 종류의 수수께끼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아무 탈 없이 평온무사하게 살아간다는 것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하루키씨의 이런 엉뚱한 비약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계속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든다고나 할까.
20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