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WORK/ㄱㄴㄷㄹ (7)
Indescribable Place
"이제 슬슬 봄인가?" 아직은 차가운, 맥주가 절반쯤 채워져 있는 500cc잔을 들이키면서 한 사내가 말했다. "글쎄, 아직 쌀쌀하지 않아?" "날씨는 약간 그럴지 모르지만, 저걸 보라구." 사내가 가리키는 쪽에는 누가 봐도 확연한 봄치마를 입은 아가씨가 있었다. "흠... 내가 보기엔 좀 이른 옷차림인데." "그게 그렇지가 않아. 우리가 보기엔 그럴지 모르지만, 당사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잖아? 그러면 이제 봄이 시작되는 거라구. 내일이면 두명, 모레면 네명, 이렇게 봄옷을 입은 여자들이 늘어날테고, 그러면 날씨도 풀리기 시작하는거야. 봄이 오는 거지. 봄은 여자의 옷차림에서 시작된다고 하잖아." "에이, 봄이 여자의 옷차림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잖아." "허허 이 사..
"어머니, 제가 생각하는 결혼이라는건 말이에요. 이제 결혼 적령기가 되었으니 짝을 찾아보자, 하고서는 짝을 찾아 나선 후에 적당히 짝을 찾아 결혼하는 그런게 아니에요. 2세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해져서 아무나 선택하게 되는 그런게 아니에요. 단지 안정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하게 되는 그런게 아니란 거죠. 저는 혼자 살고 있는 지금도 꽤 안정적이고, 아쉬울게 없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게 아니에요, 결혼을 하기 위해서 여자를 만나겠다는게 아니라는 거죠. 여자들을 접하다보면, 혼자 살면서도 만족하고 있는 지금의 삶을 포기하면서 결혼을 하고픈 그런 사람을 만나게도 되겠죠. 그러면 그런 사람과 결혼할겁니다. 만일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구요? 그러면 결혼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건 불쌍하다..
이 카테고리의 글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같은 느낌의 글을 적으려고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A 부터 Z 로 시작하는 글들을 쓰는건 취향이 아닌것 같아서, ㄱ부터 ㅎ으로 시작하는 글을 적고나면 다시 ㄱ으로 시작. 이렇게 무한 반복하려는 취지인 것이죠. 그리고 단어선정은 가능한 순우리말로. 하지만 ㄹ에 이르러서 리플러가 선택된건 순 우리말중에 ㄹ로 시작하는건 너무 드물기 때문.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겠죠; 글의 내용은 물론 창작이고 픽션이지만, 어딘가에 나의 얘기가 들어있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겠습니다. 특히 이 다음의 ㅁ차례에 올라올 글 같은 류는...
어느 날, 접속자가 꽤 되는 어느 사이트에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왔다. =-=-=-=-=-=-=-=-=-=-=-=-=-=-=-=-=-=-=-=-=-=-=-=-= 나는 리플러다. 리플을 다는 사람. 요즘 세상에 인터넷하는 사람치고 리플을 달아본 적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만큼은 확실히 리플러라고 칭하고 싶다. 나는 그 만큼 리플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 원칙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첫째, 리플은 최대한 짧게. 리플은 본문의 내용을 보조하거나, 본문의 내용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다든지, 간단한 유머, 등등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이상으로 긴 리플을 달아서 본문을 해치는, 즉 본문을 작성한 사람에게 무례가 되는, 그런 행동은 삼가해..
그는 가만히 누워서 그게 언제적 일인지를 생각해보았다. 대충 2주전의 일이었다. 그가 새집으로 이사를 온 것은. 괜찮은 집이었다. 대중교통도 가까운 편이고, 볕도 잘 들었다. 가격도 그만하면 적당했다. 그는 당장 전세계약을 하고, 이사를 마쳤다. 방은 최대한 심플한 컨셉으로, 거의 장식을 하지 않았다. 그림이 멋진 달력 하나 정도. 블라인드도 달지 않았다. 창문 바깥은 탁 트인 공간이어서 별다른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새집에 적응을 했고, 그 다음 일주일은 회사에서 계속 야근을 했다. 집에는 잠시 들러서 옷만 갈아입는 정도. 오늘에야 겨우 짬이 생겨 집에와서 자리에 눕게된 그는, 아무래도 블라인드를 달아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달이 밝았던 것이다. 마주하고 술잔을 기울이기에는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