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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러

거울노을 2009. 2. 24. 14:04
어느 날, 접속자가 꽤 되는 어느 사이트에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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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리플러다. 리플을 다는 사람. 요즘 세상에 인터넷하는 사람치고 리플을 달아본 적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만큼은 확실히 리플러라고 칭하고 싶다. 나는 그 만큼 리플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 원칙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첫째, 리플은 최대한 짧게.

 리플은 본문의 내용을 보조하거나, 본문의 내용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다든지, 간단한 유머, 등등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이상으로 긴 리플을 달아서 본문을 해치는, 즉 본문을 작성한 사람에게 무례가 되는, 그런 행동은 삼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자신이 작성한 글에 대해서 그렇게 긴 리플을 다는 경우에는 본문 자체가 잘못 작성되어서 그것을 보충하려고 한 경우이므로, 이 경우에는 본문도 리플도 문제이다.

 따라서 나는 가능한 리플은 최대한 짧게 달려고 노력해왔다. 읽는 사람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 한줄의 리플. 그걸로 족하다.


둘째, 시간을 들인다.

 최대한 짧게 달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인데, 표현의 길이가 제한되므로 가능한 많은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고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 마치 시어를 고르는 시인의 그것처럼 말이다.

 다듬고 다듬어서 촌철살인하는 문구가 완성되었을때의 기쁨. 진정한 리플러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셋째, 글은 자제.

 진정한 리플러라고 자신을 칭하기 위해서, 본문 글을 쓰는 것은 자제해 왔다. 장문의 글을 쓰는게 나쁜 것은 아니나, 장문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진정한 리플러로서의 마음가짐은 아무래도 희석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특별한 정보의 공유 등의 목적이 있을때만 글을 써왔다.


대충 이 정도의 원칙을 지금까지 지켜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단지 하고픈 말이 많아졌거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정통 리플러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글을 마지막으로 리플러의 칭호를 버리려고 한다. 쓰고싶은 글을 맘대로 쓰고, 악플도 마음껏 달 것이고, 내키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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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이 글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무 리플도 달리지 않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본문이 너무 길었다든지 내용이 너무 진지했다든지 갖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짤방이 없어서라는게 대세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