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scribable Place

너무 본문

WORK/ㄱㄴㄷㄹ

너무

거울노을 2007. 9. 4. 21:52

 <너무>는 부사로서 '정도에 지나치게'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커피에 설탕을 너무 많이 넣었다' 라든가 '이 문제는 너무 어렵다' 라는 식으로 '- 그래서 좋지 않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꺅- 나 누구누구 너무 멋져-' 라든가, '사장님 오늘 옷이 너무 멋지십니다-' 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의도로 썼다고 한다면 틀린 표현이 아니다. '나 누구누구가 정도에 지나치게 멋져서 안 좋은것 같다' 라든지, '사장님 오늘 옷이 좀 지나치게 멋지시네요. 좋지 않습니다' 등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면 그리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하겠다. 다만 너무라는 단어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알고 쓰는 것과, 그냥 '많이' 정도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만 알고 쓰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녀는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어느새 도래해버린 인터넷 세상. 누구나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간단하게 글을 올릴 수 있고, 간단하게 다른 사람들이 올린 수많은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간단한 행위가 항상 망설여지는 그녀였다. 좀전에 작성한 글만 해도 간단한 정보를 알리는 내용의 글이었으나, 어떻게 읽으면 잘난척하는 글 같기도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매번 그랬듯이 하드 한 구석에 글을 저장하고는 문서편집기를 종료했다.

 문득, 오늘 낮에 공원에서 보았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서 도너츠를 먹고 캔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다가 지치면 하늘을 보았고, 하늘을 보다가는 다시 책을 읽곤 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가 그녀의 옆을 지나 잔디밭으로 들어가더니 벌렁 누워버렸다. 깎은지 오래된듯한 약간 긴 머리였지만 나름대로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복장도 깔끔한 편이었다. 그다지 이런 시각에 이런 곳에서 벌렁 누워 하늘만 바라볼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대로 누워서 해질무렵에 그녀가 집으로 돌아올때까지 계속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 사람이라면 나처럼 소심한 고민은 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다른 이들의 반응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글을 써서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느낀점을 바로바로 솔직하게 답하는, 그리고 자신이 방금 적었던 글정도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길 그런 스타일의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방금 자기가 작성했던 파일을 열어, 자주가던 사이트의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나니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배가 고파진 그녀는 찬장에서 라면을 꺼냈다. 냄비에 물을 담아 가스렌지위에 올려 놓고, 라면봉지를 뜯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