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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저녁노을 본문
거울 속의 저녁노을
Haruki Murakami
우리는 (우리라 함은 물론 나와 개를 말한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 오두막을 나왔다. 내가 베개맡에 앉아서 <1963년도판 조선(造船)연감>을 소리 내어 읽고 있는 사이에(그 이외에 오두막 안에는 책이라곤 없었다) 아이들은 금세 잠에 빠져 들어 나직한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총 배수량 23652톤, 전체 높이 37.63미터....' 따위 문장을 읊고 있으면 제아무리 코끼리 떼라 해도 잠들어 버린다.
"저 주인 어른." 하고 개가 말했다.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요. 오늘 밤은 달님이 무척 아름다워요"
"좋고 말고."
이처럼 나는 말을 할 줄 하는 개와 생활하고 있다. 물론 말을 할 줄 아는 개는 극히 드물다. 말을 할 줄 아는 개와 살기 전에는 나는 마누라와 함께 살았다. 작년 봄. 시내 광장에서 바자가 열렸는데, 나는 거기에서 말을 할 줄 아는 개와 마누라를 바꿨다 나와 거래를 한 상대방과 나 둘 중에 누가 이득을 보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마누라를 사랑했지만, 말을 할 줄 아는 개란 그 무엇보다도 희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와 개는 강을 따라 비스듬한 구릉을 올라서는, 그대로 숲으로 들어갔다. 때는 7월, 매미랑 개구리 울음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오솔길에 드문드문 무늬를 그려내고 있다. 걸으면서, 나는 지나가 버린 과거의 나날들을 떠올렸다.
"주인 어른,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데요?" 라고 개가 물었다.
"옛날 일." 하고 나는 대답했다. "젊었을 때 일."
"잊어버리세요."라고 개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일 따위 되짚어 봤자 비참할 뿐이죠. 참 이해할 수 없군. 비참한 인간일수록 더욱 비참해지려고 하니, 아시겠어요......."
"이제 그만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는 잠자코 걸었다. 개는 주인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개를 지나치게 귀여워한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봄 바자에서 또 다른 무엇과 개를 교환하게 될 테지. 마누라를 되찾는 일은 불가능하더라도, 하프를 켤 줄 아는 영양정도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는 그런 나의 생각을 눈치챈 듯했다.
"그렇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하고 개가 변명을 했다.
"주인 어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조금 더 갔다가, 그리고 되돌아오자." 라고 나는 말했다.
"숲속의 밤은 무서우니까 말이야."
"정말 그래요. 숲속의 밤은 무섭죠." 라고 개는 말하고 잠시 생각에 빠져 들었다.
"밤의 숲속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죠. 예를 들면 거울 속의 저녁 노을이라든가....... ."
"거울 속의 저녁 노을? " 나는 깜짝 놀라 그렇게 되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오래된 전설이죠. 엄마 개가 새끼 강아지들에게 겁주려고 할 때 흔히 사용하지요."
"흐흠." 하고 나는 웅얼거렸다.
"어때요, 이쯤에서 조금 쉬지 않으렵니까?"
"좋고 말고."
나는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거울 속의 저녁 노을 얘기 좀 더 자세하게 해 주지 않겠니?"
"내년 봄 바자에 나를 내다놓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신다면요. 저, 이 나이가 돼가지고 또 개장 안에 갇혀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약속하지." 하고 나는 말했다.
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발에 묻은 흙을 나무 뿌리에 비며 떨어내고선 천천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 부근에 있는 개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얘기에요. 이 드넓은 숲 어딘가에 수정으로 된 작고 동그란 연못이 있어서 말이죠, 그 수면이 마치 거울처럼 매끈매끈하거든요, 그리고 거기에는 늘 저녁 노을이 비추어져 있다는 얘기예요.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늘 저녁 노을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글쎄요" 라고 말하고 개는 어깨를 으쓱했다.
"수정이란 아마도 기묘하게 시간을 빨아들이는 모양이죠. 정체모를 심해어(深海魚)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아주 위험하겠지?"
"예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모두 거기에 빠져들고 싶어진대요. 아무튼 정말 너무 너무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라서, 그리고 한번 거기에 빠져든 사람은 영원히 그 저녁 노을의 세계 속을 헤매 돌아다니게 되죠."
"별로 나쁘지는 않잖아."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라고 말하며 개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해 보면, 대개의 일들은 생각했던 만큼 재미있지 않은 법이죠. 두 번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경우에는 더욱이 말이에요."
"저녁 노을은 내가 좋아하는 거야."
"참 내, 저는 뭐 안 좋아하는 줄 아세요."
나는 한동안 잠자코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넌 실제로 그.....거울 속의 저녁 노을이란 걸 본 적이 있니?"
"아니요." 라며 개는 고개를 저었다.
"본 적은 없어요. 부모님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죠. 부모님은 또 그들의 부모님한테서 들은 거구요.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오래된 전설이라고."
"그걸 본 개는 없다는 말이지?"
"그걸 본 개는 모두 그 저녁 노을 속으로 끌려들어가 버리고 말았다니까요."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사람이건 개건 모두 생각하는 것들이 대충 비슷하죠." 하고 개는 말했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가자."
우리는 온 길과 같은 길을 되돌아 묵묵히 걸었다. 풀고사리잎이 밤바람에 바닷물결처럼 일렁이고, 새하얀 달빛 속에는 꽃 향기가 떠다니고 있었다. 졸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멀어지고, 밤을 나는 새는 금속편을 맞부벼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피곤하세요?" 라고 개가 물었다.
"괜찮아." 라고 나는 말했다. "아주 상쾌한 기분이다."
"그렇다면 상관없지만요." 라고 개는 말했다.
"그건 그렇고." 라고 나는 말했다.
"아까 한 얘기는 전부 네 멋대로 꾸며낸 얘기지?"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뭣하러......"
"괜찮으니까 사실을 말해 봐." 라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눈치채셨어요. 역시?"
"당연하지."
개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머리를 갈작갈작 긁었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얘기였죠."
"하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잊어버리면 안돼요. 내년 봄에 있을 바자 때 말이에요. 주인 어른이 틀림없이 약속을 하셨으니까."
"알고 있어."
"개장 안에만은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하고 개는 말했다.
우리는 오두막까지 남은 길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여하튼 그것은, 가슴이 시리도록 달님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는 (우리라 함은 물론 나와 개를 말한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 오두막을 나왔다. 내가 베개맡에 앉아서 <1963년도판 조선(造船)연감>을 소리 내어 읽고 있는 사이에(그 이외에 오두막 안에는 책이라곤 없었다) 아이들은 금세 잠에 빠져 들어 나직한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총 배수량 23652톤, 전체 높이 37.63미터....' 따위 문장을 읊고 있으면 제아무리 코끼리 떼라 해도 잠들어 버린다.
"저 주인 어른." 하고 개가 말했다.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요. 오늘 밤은 달님이 무척 아름다워요"
"좋고 말고."
이처럼 나는 말을 할 줄 하는 개와 생활하고 있다. 물론 말을 할 줄 아는 개는 극히 드물다. 말을 할 줄 아는 개와 살기 전에는 나는 마누라와 함께 살았다. 작년 봄. 시내 광장에서 바자가 열렸는데, 나는 거기에서 말을 할 줄 아는 개와 마누라를 바꿨다 나와 거래를 한 상대방과 나 둘 중에 누가 이득을 보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마누라를 사랑했지만, 말을 할 줄 아는 개란 그 무엇보다도 희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와 개는 강을 따라 비스듬한 구릉을 올라서는, 그대로 숲으로 들어갔다. 때는 7월, 매미랑 개구리 울음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오솔길에 드문드문 무늬를 그려내고 있다. 걸으면서, 나는 지나가 버린 과거의 나날들을 떠올렸다.
"주인 어른,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데요?" 라고 개가 물었다.
"옛날 일." 하고 나는 대답했다. "젊었을 때 일."
"잊어버리세요."라고 개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일 따위 되짚어 봤자 비참할 뿐이죠. 참 이해할 수 없군. 비참한 인간일수록 더욱 비참해지려고 하니, 아시겠어요......."
"이제 그만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는 잠자코 걸었다. 개는 주인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개를 지나치게 귀여워한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봄 바자에서 또 다른 무엇과 개를 교환하게 될 테지. 마누라를 되찾는 일은 불가능하더라도, 하프를 켤 줄 아는 영양정도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는 그런 나의 생각을 눈치챈 듯했다.
"그렇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하고 개가 변명을 했다.
"주인 어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조금 더 갔다가, 그리고 되돌아오자." 라고 나는 말했다.
"숲속의 밤은 무서우니까 말이야."
"정말 그래요. 숲속의 밤은 무섭죠." 라고 개는 말하고 잠시 생각에 빠져 들었다.
"밤의 숲속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죠. 예를 들면 거울 속의 저녁 노을이라든가....... ."
"거울 속의 저녁 노을? " 나는 깜짝 놀라 그렇게 되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오래된 전설이죠. 엄마 개가 새끼 강아지들에게 겁주려고 할 때 흔히 사용하지요."
"흐흠." 하고 나는 웅얼거렸다.
"어때요, 이쯤에서 조금 쉬지 않으렵니까?"
"좋고 말고."
나는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거울 속의 저녁 노을 얘기 좀 더 자세하게 해 주지 않겠니?"
"내년 봄 바자에 나를 내다놓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신다면요. 저, 이 나이가 돼가지고 또 개장 안에 갇혀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약속하지." 하고 나는 말했다.
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발에 묻은 흙을 나무 뿌리에 비며 떨어내고선 천천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 부근에 있는 개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얘기에요. 이 드넓은 숲 어딘가에 수정으로 된 작고 동그란 연못이 있어서 말이죠, 그 수면이 마치 거울처럼 매끈매끈하거든요, 그리고 거기에는 늘 저녁 노을이 비추어져 있다는 얘기예요.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늘 저녁 노을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글쎄요" 라고 말하고 개는 어깨를 으쓱했다.
"수정이란 아마도 기묘하게 시간을 빨아들이는 모양이죠. 정체모를 심해어(深海魚)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아주 위험하겠지?"
"예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모두 거기에 빠져들고 싶어진대요. 아무튼 정말 너무 너무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라서, 그리고 한번 거기에 빠져든 사람은 영원히 그 저녁 노을의 세계 속을 헤매 돌아다니게 되죠."
"별로 나쁘지는 않잖아."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라고 말하며 개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해 보면, 대개의 일들은 생각했던 만큼 재미있지 않은 법이죠. 두 번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경우에는 더욱이 말이에요."
"저녁 노을은 내가 좋아하는 거야."
"참 내, 저는 뭐 안 좋아하는 줄 아세요."
나는 한동안 잠자코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넌 실제로 그.....거울 속의 저녁 노을이란 걸 본 적이 있니?"
"아니요." 라며 개는 고개를 저었다.
"본 적은 없어요. 부모님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죠. 부모님은 또 그들의 부모님한테서 들은 거구요.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오래된 전설이라고."
"그걸 본 개는 없다는 말이지?"
"그걸 본 개는 모두 그 저녁 노을 속으로 끌려들어가 버리고 말았다니까요."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사람이건 개건 모두 생각하는 것들이 대충 비슷하죠." 하고 개는 말했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가자."
우리는 온 길과 같은 길을 되돌아 묵묵히 걸었다. 풀고사리잎이 밤바람에 바닷물결처럼 일렁이고, 새하얀 달빛 속에는 꽃 향기가 떠다니고 있었다. 졸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멀어지고, 밤을 나는 새는 금속편을 맞부벼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피곤하세요?" 라고 개가 물었다.
"괜찮아." 라고 나는 말했다. "아주 상쾌한 기분이다."
"그렇다면 상관없지만요." 라고 개는 말했다.
"그건 그렇고." 라고 나는 말했다.
"아까 한 얘기는 전부 네 멋대로 꾸며낸 얘기지?"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뭣하러......"
"괜찮으니까 사실을 말해 봐." 라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눈치채셨어요. 역시?"
"당연하지."
개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머리를 갈작갈작 긁었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얘기였죠."
"하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잊어버리면 안돼요. 내년 봄에 있을 바자 때 말이에요. 주인 어른이 틀림없이 약속을 하셨으니까."
"알고 있어."
"개장 안에만은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하고 개는 말했다.
우리는 오두막까지 남은 길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여하튼 그것은, 가슴이 시리도록 달님이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