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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어

거울노을 2012. 2. 22. 10:17
그 당시의 나는 마치 심해어 같았다. 깊은 바다 속에서 가만히 존재하는 심해어. 얕은 바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경쓰지 않고, 깊고 어두운 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 그닥 아름답지는 않은 외모지만 내 주위 정도라면 은은하게 비출수 있는 나만의 빛을 갖고 있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빛에 이끌려 누군가가 와 준다면 더 좋을 테지만... 나만 생각해도 되는 그 공간이 좋았고, 아늑했다. 결국 내가 바라던 누군가는 절대 나의 빛에 이끌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조금씩 더 밝아져서 얕은 바다까지 은은하게 퍼지던 나의 빛에 대해서 관심을 갖던 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걸, 그 빛을 한동안 지켜본 이들도 있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어정쩡한 심해어인것 같다. 깊은 바다 속에서 기다리다 지쳐 조금씩 얕은 바다로 올라온, 조금씩 올라오며 이리 저리 기웃거리기만 하고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너무 많이 올라와버린, 주위는 너무 밝아서 스스로 내던 은은한 빛이 이제 무색한, 급한 물살의 흐름에 자리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안간힘이 지나쳐 몸부림을 치다 주위에 피해를 주기도 하는, 더이상 나만 생각할 수 없는, 다시 내려가고 싶지만 예전의 그 깊은 곳까지는 내려갈 용기가 없는, 그런 어정쩡한 심해어. 내려가자 언젠가는. 너무 깊지도 않고 너무 얕지도 않을 나의 공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