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scribable Place

빠른 년생을 위한 변명 본문

ASIDEs

빠른 년생을 위한 변명

거울노을 2013. 10. 7. 19:27

인터넷 게시판들을 서핑하다보면 가끔씩 파이어되는 주제 중 하나가 빠른 년생 이슈가 아닐까 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그 이슈는 그 사람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떻게 처신하느냐의 이슈인데, 그 이슈가 발현되는 배경이라고 해야되나 암튼 그런게 빠른 년생이었을 뿐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다. 내 말은 대부분이 그렇다는 거... 가장 문제를 따지면 빠른 년생 제도 자체가 문제. 그 문제있는 제도 하에서 다들 12년간을 생활해오니 각자 쌓일게 쌓여서 파이어되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런데 항상 결론은 왠지 빠른 년생이 가해자이며 나쁜놈이 되는듯 하여, 나도 한 사람의 빠른 년생으로서 빠른 년생을 옹호하는 글을 몇자 적어보려고 한다.


 제도적 관습적인 문제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릴때는 어른들이 다 그렇게 하라고 시켰는데, 자라고 나니 '대접받을 생각 하지 마라'는 말이 돌아온다는 거다. 예를 들어 나에게는 생년이 같은 사촌동생이 있다. 나는 1월생이고 그녀석은 11월생. 근데 주위 어른들이 어릴때부터 이녀석한테 나를 형이라고 부르게 시켰다. 학년도 다르고 생일도 10개월 정도 차이나니까 어찌보면 나름 말이 되는 이유이고, 그래서 지금도 나를 형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건 단지 가족,친척간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초등학교에 입학할때부터 이와 마찬가지의 교육을 받아온다. '여러분은 1학년이니까, 2학년은 형,누나,언니,오빠 라고 하세요' 라고 하지 않던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간 교육을 받아오면서, '여러분은 동급생이지만 1,2월의 빠른년생은 다른 친구들한테 형이라고 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1학년이지만 2학년의 빠른년생은 친구먹고 지내도록 하세요' 라고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나? 뭐가뭔지 모를 코흘리개부터 알거다아는 고교졸업시까지 그렇게 지내왔는데, 사회에 나가니 '나는 그런거 인정안한다'는 사람을 갑자기 만나게 된다. 그래도 대부분의 빠른년생들은 어떻게든 잘 대처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을 초등학교 저학년때 이미 만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지만 원만히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고, 혹은 원만히 대처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예 불만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당연히) 빠른년생이다. 12년간 교육받아온 대로 행동하면 원인 제공자가 된다. 빠른년생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빠른년생이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말을 하려는거다. 이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할때 빠른년생은 1년늦게 입학할수 있도록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다행인듯.


빠른 년생은 1,2월생이기 때문에 당연히 소수이다. 그리고 빠른 년생은 양쪽에 한다리씩 걸치고 있는 느낌이라 결국 일종의 박쥐같은 느낌을 준다. 나이는 어리지만 동급생이거나, 나이가 같지만 상급생이라는 점은 흡사 양쪽 집단에서 이로운 점만 취득하여 행동할 수 있어서 일단 그 자체만으로도 고운 시선을 받기 힘들다는 점이 있다. 실제로도 그런걸 잘 이용해서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럴까. 대부분의 빠른 년생은 크든 작든 자신안에 당연한것처럼 되어 있는 것들의 일부를 포기하면서 주위 사람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른바 '빠른년생 대접'을 받는게 목적인게 아니라, 긴 기간동안 자신과 주위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쉽게 바꾸기가 어려운 사람들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은 무조건 빠른 년생은 좀 이해해줍시다. 라고 주장하는 글이 아니다. 혹시 누군가 빠른 년생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쓴 글이다. 또는 주위와의 관계에서 빠른 년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트러블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그래 나는 제도권 교육의 피해자였어'라고 위안 삼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담아 쓴 글이다. 물론 줄은 따닥따닥 붙어있고 폰트도 작은 이런 글을 꼼꼼이 읽을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냥 이렇게 적으면서 빠른 년생으로서의 내 심정이 조금은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나쁘지는 않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