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scribable Place

야구여행 본문

ASIDEs

야구여행

거울노을 2009. 5. 12. 17:44

  5월초에 4일정도 연휴가 있었습니다. 토-화 까지. 동경에 있던 친구녀석이랑 목요일에 메신저로 얘기를 나누다가, 심심하면 놀러오라고 해서 다음날인 금요일 밤 비행기로 놀러가기로 계획을 해서 어찌어찌 표도 사고 등등등 준비를 완료. (내가 이렇게 행동파였나)

  다음날 회사는 점심때쯤 조퇴하고 집에와서 짐을 챙긴뒤 여유있게 김포공항으로 출발. 혹시 막힐지 모르니 안전한 지하철로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 한 역에서 여행가방을 끌고 한 처자가 탑승. '아 저 사람도 나처럼 급하게 일본에 가는 사람일까' '비행기 탈때 저 사람도 있나 잘 찾아봐야지' '아 그런데 여권을 안가져왔네?'

  이것이 1시간의 지하철 여행이 지나고 김포공항을 불과 5정거장 앞둔 까치산 역에서의 생각의 흐름이었습니다. 바로 내려서 첫번째로 보이는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고고싱-_- 기사아저씨가 나이드신 분이어서 빨리 가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시간대에 따른 길 상황을 꿰고게신 노련한 분이셔서 (와우로 따지면 길 다 아는 백발의 노움전사 같은 느낌), 간신히 시간에 도착한 후 정신없이 티케팅하고 소지품검사하다가 맥가이버칼이 걸려서 다시 가서 화물로 부치고 면세점에서 친구녀석이 부탁한 담배랑 술사고 등등 정신차려보니 벌써 비행기에 타고 내 좌석에 앉아있더군요. 이것이 사진이 없는 이유라면 이유랄까...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때마침 돼지플루 덕분에 입국절차가 엄청 까다롭고 길었습니다. 게다가 비행기에서 자리가 거의 맨 뒷자리였던 관계로 줄도 거의 맨 끝에 선 상황. 금요일 밤차였지만 전철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헐레벌떡 서둘러서 거의 막차를 탔네요. 시간은 밤 12시. 어찌어찌 시나가와역에 도착해서 친구녀석을 만나고 갈아타서 친구녀석의 집이 있는 오오이마치역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맥주를 마시다 자려는데 든 생각. '이거 서울에서의 금요일밤과 너무 차이가 없는데;' 여기까지 역시 사진이 없는 이유라면 이유랄까...


친구녀석의 집 베란다에서


  토요일 아침 느즈막히 일어났는데, 친구녀석이 야구를 하러 가야된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사회인야구를 초야구(쿠사야큐)라고 부르는데요, 암튼 이녀석이 그걸 하고 있었죠. 저는 여행객의 가벼운 마음으로 어떤가 하고 가봤습니다만, 호도가야에 있는 구장에 도착하니 우리팀은 저까지 3명. 잉? 결국 시작시간이 다 됐는데도 9명이 모이지 않아 저는 1루수에 5번타자가 되었습니다. 왜 글러브를 안가져왔냐는 소리를 들으면서 상대팀에게서 글러브도 빌렸죠. 전 어느덧 용병에 1루수를 보고 5번을 치는 李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실력만 빼면 이승엽과 너무 비슷한 상황)

호도가야 연식구장 (가운데의 짙은색 옷이 친구녀석)


  일본은 야구시설이 상당히 잘되어 있습니다. 이런 정도의 구장도 미리 예약만 하고 적당한 요금만 내면, 이렇게 9명이 모이기도 힘든 팀도 사용할 수가 있죠. 외야에는 잔디도 있습니다. 일단 제 외모가 강타자의 면모에 부족함이 없기에 저는 아주 강타자인것 같은 폼을 구사해서 볼넷으로 나가는 신공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던 운명의 어느 타석.

  저는 아주 큰 파울을 날렸습니다. 그 큰 파울은 담장을 넘어서 어느 일본인의 자동차에 맞았습니다. 다행히 이 리그는 연식공을 사용하기 때문에 차는 이상이 없었습니다만, 장본인인 저로서는 묘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차주인인 꼬장한 아저씨가 쉽게 물러서지 않으시더니, 어느 순간 현지 경찰 2명이 나타났습니다. 이미 경기는 시간이 많이 흘러서 끝났습니다. 다음팀이 기다리니까요. 나중의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이 파울을 사요나라 파우루(끝내기파울)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암튼 경찰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먼 타국에 와서 야구를 하다가 위험한 파울타구를 날려 일본인의 차를 직격하여 국제문제를 야기한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여권은 마침 친구집에 두고왔습니다. (왜 중요한 순간마다 여권은 집에 있는걸까요) 경찰이 저를 부릅니다. 경찰도 곤란해합니다. 뭐 결과적으로 포수인 료상이 일단 책임을 지기로 하고, 추후에 수리비나 그런게 나오면 친구를 통해서 저한테 연락하기로 하고 일단락 되었습니다만. 지나고 나니 웃기는 경험입니다. 팀원들은 다들 좋은 사람입니다. 저에게 계속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다이죠부 다이죠부)

  월요일에 있을 다음 경기에서 보기로 기약하고 다들 헤어집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되는 바람에 월요일에도 야구를 해야하게 생겼습니다. 뭐 그건 그때 일이고 일단 근처의 요꼬하마로 갑니다. 요꼬하마는 개항 15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하고 있습니다. 9월정도까지 하네요.

요꼬하마에서 유명한 건물. 이름 모름.


요꼬하마의 아까렝가소코(붉은벽돌창고 뭐 그런)


  무심코 상영하는 애니메이션을 봅니다. (자막도 없는데 왜 본거냐) 이왕 온김에 이것저것 몽땅 구경합니다. 벌룬을 공중에 띄워놓고 거기에 영상을 쏴서 지구처럼 보이게 한것도 있습니다. 뭔가 영상을 상영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여기가 유일한 관광이었습니다. 뭐라도 하나 살걸 그랬나봅니다. 일본의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술을 마시는 곳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와서 잡니다.

  다음 날입니다. 반다이 박물관에 방문하려고 했으나 편도 2시간반이라는 거리에 포기해버립니다. 2시간반이면 서울에서 익산가는 거리입니다. 익산을 당일치기로 갔다오는 셈입니다. 관두고 라면을 먹으러 갑니다. 오이시이~ 하면서 사진을 찍을까 생각해 봅니다. 옆자리에 한국 여자애들 여럿이서 후레쉬를 터뜨리면서 이미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사진은 관두고 그냥 먹기로 합니다. 어딘가 맛이 한국 관광객을 노렸나 싶은 느낌이 납니다. 어쨌거나 잘 먹습니다.

23구에 300엔! 역시 한국보단 비싸다


앞에서 투수가 피칭을 하는 모습이 나오고 공이 나온다. 가격이 아깝지 않음.


  신주꾸에 가서 배팅센터를 갑니다. 내일 있을 시합에 대비해서 타격 감각을 조율하려는 목적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난 보통의 여행객입니다. 몇년만의 타격이라 그런지 잘 안됩니다. 걱정이 됩니다. 저녁엔 비꾸카메라(BIC Camera)에 가서 플스3을 사가지고 집에 옵니다. 친구녀석과 스트리트파이터4를 즐기고 술을 마십니다. 이것도 서울의 주말과 흡사합니다.

아자부 구장. 야간조명도 있다. 그냥 주택가 사이에 있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펜스에 붙어서 구경하곤 한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또 야구를 하러 갑니다. 이번엔 아자부 구장입니다. 이날은 인원수가 충분해서 다행스럽게도 마음 편한 지명타자를 하기로 합니다. 이곳은 펜스도 아주 높아서 넘길수도 없어 보입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상대팀이 이상합니다. 양키들입니다!

양키와 일본인의 혼성팀. 아이들도 보인다. 처음엔 싸돌아다니더니 마지막회쯤엔 정말 열심히 응원.


상대팀 투수. 타격실력에 비해서 투수실력은 별로였다.


  양키들과 야구를 해보게 되다니, 참고로 이들의 실력은 트리플에이 급이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보통때는 우익수쪽으로도 타구가 가는데, 이날은 전부 당겨칩니다. 타구도 쭉쭉 나갑니다. 뭔가 야구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회에 역전패를 하지만 괜찮은 경기였습니다. Go! Spiders!

팀원 사진. 교포3세인 손상. 포수이자 국제분쟁을 막아준 료상. 뉴질랜드에서 온 로드니. 마지막은 감독인 코스케상.


  저녁엔 에비수 박물관에 갑니다. 하지만 박물관은 6시까지만 연다고 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비어스테이션에서 맥주를 또 마십니다. 안주가 아주 맛납니다. 다음날 천천히 일어나 공항에 향합니다. 관광이라기엔 좀 그렇지만, 야구와 맥주와 함께한 야구여행으로 평가하면 괜찮은 점수를 줄수있을 듯 합니다. 다음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글러브를 챙겨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